회장인사의 말

HOME > 회장인사의 말

 

hj001.jpg

우리 선산임씨(善山林氏) 서울근교 거주 종친들께서 1976년 정월초하루에 단배회를 겸해 고(故) 임완회 종친댁에 모인 일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종친들이 매월 친목모임을 갖기로 뜻을 같이하여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왔던 모임체가 소림회(素林會)입니다.(광주에는 청림회(靑林會)라는 모임체가 생겼습니다.) 이 모임체를 모태로 1979. 5. 6. 광주 금남로에서 우리 종문의 대종회격인 「선산임씨전국종친회」가 결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 종문은 본향과 거주지를 기준으로 구분하여 보면 크게 4부류로 볼 수 있습니다. 서울(수도권)·호남·충청(임백령공 후손)·경남(임구령공 후손의 고성·거제, 임복룡공 후손의 창원)인데, 모임체 별로 보면 서울은 소림회, 호남은 청림회가 있고 충청은 충청종친회, 경남은 경남종친회(당초 명칭은 영남종친회)라 하였습니다.(경남은 지금도 매년 전체종중모임을 개최하고 있으며, 충청은 임백령공의 가을시제에 많은 후손이 모입니다.) 이 4개 그룹이 모두 모여 대종회 격의 전국종친회를 발족시킨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1995년 7월 참으로 우연한 인연으로 당시 소림회 총무직을 맡고 계시던 종친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후 소림회 모임에 참석하면서 여러 종중어르신들과 교유를 쌓으며 우리 씨족사의 단편들과 족보편찬(1995년 을해보) 뒷이야기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소림회와의 만남은 저와 우리 씨족 내지 대종회와의 관계에서 저에게는 운명적 소명(召命)이 주어진 계기가 된 셈이었습니다. 그 연유인즉, 우리 종문 내 어느 종친께서 시조 임양저공의 산소와 관련된 이설(異說)을 제기한 바 이에 동조하는 종친들이 계시고 특히 저의 고향 쪽(경남) 종친들이 적극성을 띄고 있었는데, 이에 관해 대종회 어르신들께서 그 설득에 고심하고 있음을 보고 저도 관심을 갖게 되어 그 해법을 찾을 겸 처음으로 우리 족보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임종필 종친(작고)께서 구 족보를 주신 게 있어 선산임씨 족보는 최초보부터 모두가지고 있는 셈이었으나, 족보에 관한 사전지식도 없고 한자독해력도 부족한 터라 족보해독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만, 한자사전을 활용하면서 겨우겨우 독해를 하는 과정에서 시조 임양저 공의 오리지널 설화기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화기사가 소재한 곳은 해남윤씨 병조판서 윤의중이 쓴 희재공(충헌공) 임백령의 행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초족보(1766년 병술보)는 손록편‘시조 임양저’방주란에 단순히‘벼슬(官) 중랑장’이라고만 쓰고 지금 족보에 나오는 것과 같은 설화 기사류의 방주는 생략하고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족보(1821년 2차 신사보) 편찬 선인들께서 시조의 방주에 해당하는 기사가 희재공행장에 있다는 사실은 깜박하시고 최초족보 시조 방주란이 공란으로 되어 있음에 대하여 아쉬움을 느끼고 나름의 조사를 해보니 평택임씨족보 상계선조에도 임양저 공이 있고 그 방주에 설화기사가 쓰여 있음을 보고 이 기사를 우리 족보에 거의 그대로 인용하여 방주를 보충하였습니다. 그 후 새 족보 편찬 시마다 기사내용이 조금씩 변작되어 8차 을해보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참고로, 오리지널 기사에는 묘소·선산귀양 등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나중에야 깨닫게 된 바입니다만, 이 최초보의 오리지널 기사는 우리 선산임씨는 물론 우리나라 임씨 종사(宗史)에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한편, 이 설화기사의 이해를 위하여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는 물론 신라 말 지방권력관련 각종 논문·서적·고문헌 등을 두루 탐구하면서, 더불어 우리나라 성씨의 시작과 발전 등에 관하여도 참고서적(중국서적 포함)을 통하여 심도 있게 알아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양저공 기사를 토대로 한 우리 씨족의 시작에 관한 역사를 정립하게 되었으며, 시조묘소와 관련된 소동도 해결을 보았습니다.

 

다른 한편, 우리 종사에서 구 족보 중 1916년 병진보, 1956년 병신보, 1977년 정사보가 상계의 계보를 평택임씨와 연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하여서는 타 임씨 족보를 거의 전수조사하고 각종 사료의 탐구를 통하여 이 상계가 어떤 연유로 씌어졌으며, 무엇을 근거로 하였으며, 그 내용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명쾌히 밝혀 우리 선산임씨의 정체성을 확실히 정립하였습니다.(수년에 걸쳐 이루어진 일련의 작업은 A4용지 약 1,000매 분량의 필사본 논고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우리 씨족 대종회 일에 깊이 관여하게 된 연유의 시작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선조들께서 저를 부르신 운명적 소명(召命)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이에 기꺼이 이 소명을 받아들이고 대종회 일에 나름의 성의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온데, 제가 전국종친회 회장의 직을 맡게 된 연유 또한 앞서 말씀 올린 우리 씨족의 정체성 확립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연인즉, 2016년~2018년의 전국종친회 집행부에 문제가 생겨 자칫 집행부 부재의 사태가 생길수도 있는 위기를 맞았는데, 이 사태를 몰랐으면 모르되 알게 된 이상 어떻게든 수습해야겠다는 소명의 마음으로 오랫동안 종친회 총무로 헌신적으로 봉사하신 임선우 종친 등 종중 일에 열성적인 몇 분들과 상의하여, 현재로선 회장으로 모실 분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니 제가 회장을 맡고 임선우 종친께서 총무를 맡아 전국종친회를 꾸려나가기로 하고 2018. 4. 28. 총회에서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재테크 실력이 없는 선비형이다 보니 종중을 위하여 크게 재력을 지원할 형편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학업과 직장에서 닦은 지식 등으로 재능기부를 함도 그 값어치가 되리라 자부하고 소임을 맡기로 하여 지금까지 대종회를 위하여 미력을 다하고 있고 일부는 성과도 있었다고 감히 말씀 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습니다만 이제 본론적인 말씀을 아뢰자면, 새 족보 편찬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우리 선산임씨족보는 1766년(영조 42) 병술년에 최초 발간되었으며 1995년 을해보까지 8차례 발간된 바 있습니다. 족보는 대략 30년 전후의 주기로 발간되는데 지금이 새 족보를 발간하여야하는 타이밍이 된 것입니다.더구나, 시대환경이 변하다보니 여러 관향들이 발간적기와 무관하게 한글족보로의 변환과 병행하여 인터넷족보를 구축하고 그런 후 인쇄족보를 발간하고 있음이 마치 유행이 된 듯합니다.

 

새 족보 발간시기를 맞은 우리 선산임씨도 그간 족보에 관심 있는 몇몇 분 종인들과 의논하기를, 시대에 맞게 좀 더 발전된 방향으로 새 족보를 편찬함이 좋겠다고 뜻을 모으고 좋은 출판사를 찾아 맡기자고 의논이 되어, 금년 봄 전국종친회 정기총회에서 새 족보편찬에 착수하기로 결의를 보았습니다. 다행히 저가 지난 몇 년간 임씨들 족보는 물론 다른 성씨 족보도 심도 있게 조사한 바도 있고, 우리 선산임씨 구 족보의 여러 잘못된 점도 파악하고 있는 터라 이러한 축적된 노하우와 지식은 우리 족보편찬의 큰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해보니 이 또한 선조님들께서 저에게 주신 우리 씨족사 정립의 큰 소명으로 생각되어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족보편찬에 임하고자 하며 여러 종친님들의 의견을 들어 발전되고 충실한 족보를 만드는데 저의 열과 성을 다할까 합니다.

 

족보편찬의 주요과정은

① 홈페이지제작(모바일 포함)

② 기존 족보 한글번역·입력·편집

③ 인터넷족보(데이터베이스) 구축

④ 신규수단 및 정정

⑤ 인쇄족보 발간이 그 대략입니다.

 

종래와 크게 다른 점은 기족 족보의 한글번역작업과 인터넷족보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입니다. 그래서 출판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다행히 저희가 선정한 서울 양평동 소재 「뿌리정보미디어」라는 출판사가 제가 조사차 접촉해 본 출판사 중에서는 족보출판경력이 풍부하고 직원들의 실력도 기대이상인 제법 규모가 큰 족보전문출판사였습니다.

 

문제는, 종래와 달리 새로운 족보편찬체계에 따르다보니 한글번역작업 및 인터넷족보 구축이라는 전에 없던 과정에 3,5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우리 씨족은 그 규모가 크지 않아 비용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나 저희 대종회 재정사정이 워낙 열악하여 이 정도 규모도 부담이 되고 달리 수입원이 있지도 않아 회장인 저로서는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번 족보는, 구 족보의 잘못된 점은 이를 밝혀 시정하고, 중요한 종사(宗史)를 포함시켜 명실상부한 우리의 씨족사 정사(正史)가 되도록 하여 종친들이 우리 성관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편집에 세심히 유의코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될수록 많은 종친들에게 배부가 될 수 있도록 염가로 제공할 계획이라 출간비용의 추가가 예상되기도 합니다.

 

이번의 족보편찬과업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우리 씨족사 기록사업이고 우리 씨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역사기록으로 남기는 소프트웨어적 사업으로서 어쩌면 재실의 신축 등 하드웨어적 대사보다 더욱 중요한 사업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종중의 대사를 당하여 이 과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여러 종친님들께 각별하신 협조의 당부말씀 올림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과거 우리 종중의 전통은 재실의 중수 등 큰 역사(役事)가 있을 때는 전국각지 온 종중이 합심 협력하여 성금을 갹출 과업을 수행하였으며, 이러한 미담은 기념비·현판 등에 새겨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족보출판을 위하여 담당출판사에서 타성관의 예를 보니 많은 종친들이 성금을 내고 있었고 이 사실을 홈페이지에서 현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우리 보사(譜事)에서도 성금을 지원해주시는 종친님의 프로필을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나중에 인쇄할 보책에서는 별도헌성기록으로 남겨 감사의 뜻을 표하고 전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선림종친제현님!

이번의 족보편찬사업은 지금까지 8차례 편찬에서 ① 부족했던 씨족사 서술을 보충하고 ② 잘못된 과오를 시정하며 ③ 일부 누락되었거나 착오가 있었던 부분은 바로잡고 보완하여 명실상부한 우리 씨족의 정사(正史)가 되겠금 편집에 온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부디 종친님들의 각별하신 관심과 협조 속에 우리 선산임씨의 족보편찬대사가 뜻한 바대로 잘 추진될 수 있도록 대종회에 힘을 보태주시기를 간원하는 저의 소망을 전해 올립니다.

 

끝으로, 이 홈페이지는 우리 선산임씨씨족사의 정사(正史)를 널리 알리는 방편일뿐 아니라 특히 새족보편찬사업, 인터넷족보구축사업 등의 추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방편입니다. (이 홈페이지에 올린 씨족사 관련 글들은 대부분 2021년 2월 전국종친회가 간행배포한 『선산임시씨족사』의 내용을 전재한 것으로 우리 씨족사의 정사(正史)에 해당하는 글들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강조드리고자 하는 바는, 인터넷망에서 ‘선산임씨’를 검색하면 카페 등에서 여러 내용의 글들이 나오는데 많은 글들이 확실한 근거하에 정론(正論)으로 쓰여진 글들이 아닌 단순 추측성 글들이거나 개인의 사견을 마치 사실인것처럼 주장하는 글들이 다수입니다.

이 홈페이지에서 정사(正史)로 제시하고 있는 글과 다른 내용의 글들에 현혹됨이 없으시도록 유의하십사 당부의 말씀 아울러 드립니다.

 

회장 임용원(林容源) 소개

* 선산임씨 경남 고성파 (월당공 구령파 능복후)

* 1945년 을유생, 중시조22세손(고성입향조 능복공은 父가 완공, 祖父가 구령공)

* 고성초교, 경남중고, 서울대 법과대졸업

*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입행 후 강남중앙지점장 등 여러 지점장을 거쳐 본점여신관리부장, 부산본부장 등 역임

* 2018년 4월 이후 선산임씨전국종친회장

* 공저 『선산임씨 씨족사』

* 논고문『선산임씨상계대고』 『임씨상계대고』(1) (2)

회장 임용원 010-3208-0027

    총무 임선우 010-2105-8488

 

p001.png 성금입금계좌(족보편찬회계용)   

농협 301-0335-6653-91   임용원(선산임씨전국종친회)

 

 

hj001.jpg

우리 선산임씨(善山林氏) 서울근교 거주 종친들께서 1976년 정월초하루에 단배회를 겸해 고(故) 임완회 종친댁에 모인 일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종친들이 매월 친목모임을 갖기로 뜻을 같이하여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왔던 모임체가 소림회(素林會)입니다.(광주에는 청림회(靑林會)라는 모임체가 생겼습니다.) 이 모임체를 모태로 1979. 5. 6. 광주 금남로에서 우리 종문의 대종회격인 「선산임씨전국종친회」가 결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 종문은 본향과 거주지를 기준으로 구분하여 보면 크게 4부류로 볼 수 있습니다. 서울(수도권)·호남·충청(임백령공 후손)·경남(임구령공 후손의 고성·거제, 임복룡공 후손의 창원)인데, 모임체 별로 보면 서울은 소림회, 호남은 청림회가 있고 충청은 충청종친회, 경남은 경남종친회(당초 명칭은 영남종친회)라 하였습니다.(경남은 지금도 매년 전체종중모임을 개최하고 있으며, 충청은 임백령공의 가을시제에 많은 후손이 모입니다.) 이 4개 그룹이 모두 모여 대종회 격의 전국종친회를 발족시킨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1995년 7월 참으로 우연한 인연으로 당시 소림회 총무직을 맡고 계시던 종친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후 소림회 모임에 참석하면서 여러 종중어르신들과 교유를 쌓으며 우리 씨족사의 단편들과 족보편찬(1995년 을해보) 뒷이야기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소림회와의 만남은 저와 우리 씨족 내지 대종회와의 관계에서 저에게는 운명적 소명(召命)이 주어진 계기가 된 셈이었습니다. 그 연유인즉, 우리 종문 내 어느 종친께서 시조 임양저공의 산소와 관련된 이설(異說)을 제기한 바 이에 동조하는 종친들이 계시고 특히 저의 고향 쪽(경남) 종친들이 적극성을 띄고 있었는데, 이에 관해 대종회 어르신들께서 그 설득에 고심하고 있음을 보고 저도 관심을 갖게 되어 그 해법을 찾을 겸 처음으로 우리 족보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임종필 종친(작고)께서 구 족보를 주신 게 있어 선산임씨 족보는 최초보부터 모두가지고 있는 셈이었으나, 족보에 관한 사전지식도 없고 한자독해력도 부족한 터라 족보해독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만, 한자사전을 활용하면서 겨우겨우 독해를 하는 과정에서 시조 임양저 공의 오리지널 설화기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화기사가 소재한 곳은 해남윤씨 병조판서 윤의중이 쓴 희재공(충헌공) 임백령의 행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초족보(1766년 병술보)는 손록편‘시조 임양저’방주란에 단순히‘벼슬(官) 중랑장’이라고만 쓰고 지금 족보에 나오는 것과 같은 설화 기사류의 방주는 생략하고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족보(1821년 2차 신사보) 편찬 선인들께서 시조의 방주에 해당하는 기사가 희재공행장에 있다는 사실은 깜박하시고 최초족보 시조 방주란이 공란으로 되어 있음에 대하여 아쉬움을 느끼고 나름의 조사를 해보니 평택임씨족보 상계선조에도 임양저 공이 있고 그 방주에 설화기사가 쓰여 있음을 보고 이 기사를 우리 족보에 거의 그대로 인용하여 방주를 보충하였습니다. 그 후 새 족보 편찬 시마다 기사내용이 조금씩 변작되어 8차 을해보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참고로, 오리지널 기사에는 묘소·선산귀양 등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나중에야 깨닫게 된 바입니다만, 이 최초보의 오리지널 기사는 우리 선산임씨는 물론 우리나라 임씨 종사(宗史)에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한편, 이 설화기사의 이해를 위하여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는 물론 신라 말 지방권력관련 각종 논문·서적·고문헌 등을 두루 탐구하면서, 더불어 우리나라 성씨의 시작과 발전 등에 관하여도 참고서적(중국서적 포함)을 통하여 심도 있게 알아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양저공 기사를 토대로 한 우리 씨족의 시작에 관한 역사를 정립하게 되었으며, 시조묘소와 관련된 소동도 해결을 보았습니다.

 

다른 한편, 우리 종사에서 구 족보 중 1916년 병진보, 1956년 병신보, 1977년 정사보가 상계의 계보를 평택임씨와 연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하여서는 타 임씨 족보를 거의 전수조사하고 각종 사료의 탐구를 통하여 이 상계가 어떤 연유로 씌어졌으며, 무엇을 근거로 하였으며, 그 내용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명쾌히 밝혀 우리 선산임씨의 정체성을 확실히 정립하였습니다.(수년에 걸쳐 이루어진 일련의 작업은 A4용지 약 1,000매 분량의 필사본 논고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우리 씨족 대종회 일에 깊이 관여하게 된 연유의 시작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선조들께서 저를 부르신 운명적 소명(召命)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이에 기꺼이 이 소명을 받아들이고 대종회 일에 나름의 성의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온데, 제가 전국종친회 회장의 직을 맡게 된 연유 또한 앞서 말씀 올린 우리 씨족의 정체성 확립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연인즉, 2016년~2018년의 전국종친회 집행부에 문제가 생겨 자칫 집행부 부재의 사태가 생길수도 있는 위기를 맞았는데, 이 사태를 몰랐으면 모르되 알게 된 이상 어떻게든 수습해야겠다는 소명의 마음으로 오랫동안 종친회 총무로 헌신적으로 봉사하신 임선우 종친 등 종중 일에 열성적인 몇 분들과 상의하여, 현재로선 회장으로 모실 분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니 제가 회장을 맡고 임선우 종친께서 총무를 맡아 전국종친회를 꾸려나가기로 하고 2018. 4. 28. 총회에서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재테크 실력이 없는 선비형이다 보니 종중을 위하여 크게 재력을 지원할 형편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학업과 직장에서 닦은 지식 등으로 재능기부를 함도 그 값어치가 되리라 자부하고 소임을 맡기로 하여 지금까지 대종회를 위하여 미력을 다하고 있고 일부는 성과도 있었다고 감히 말씀 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습니다만 이제 본론적인 말씀을 아뢰자면, 새 족보 편찬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우리 선산임씨족보는 1766년(영조 42) 병술년에 최초 발간되었으며 1995년 을해보까지 8차례 발간된 바 있습니다. 족보는 대략 30년 전후의 주기로 발간되는데 지금이 새 족보를 발간하여야하는 타이밍이 된 것입니다.더구나, 시대환경이 변하다보니 여러 관향들이 발간적기와 무관하게 한글족보로의 변환과 병행하여 인터넷족보를 구축하고 그런 후 인쇄족보를 발간하고 있음이 마치 유행이 된 듯합니다.

 

새 족보 발간시기를 맞은 우리 선산임씨도 그간 족보에 관심 있는 몇몇 분 종인들과 의논하기를, 시대에 맞게 좀 더 발전된 방향으로 새 족보를 편찬함이 좋겠다고 뜻을 모으고 좋은 출판사를 찾아 맡기자고 의논이 되어, 금년 봄 전국종친회 정기총회에서 새 족보편찬에 착수하기로 결의를 보았습니다. 다행히 저가 지난 몇 년간 임씨들 족보는 물론 다른 성씨 족보도 심도 있게 조사한 바도 있고, 우리 선산임씨 구 족보의 여러 잘못된 점도 파악하고 있는 터라 이러한 축적된 노하우와 지식은 우리 족보편찬의 큰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해보니 이 또한 선조님들께서 저에게 주신 우리 씨족사 정립의 큰 소명으로 생각되어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족보편찬에 임하고자 하며 여러 종친님들의 의견을 들어 발전되고 충실한 족보를 만드는데 저의 열과 성을 다할까 합니다.

 

족보편찬의 주요과정은

① 홈페이지제작(모바일 포함)

② 기존 족보 한글번역·입력·편집

③ 인터넷족보(데이터베이스) 구축

④ 신규수단 및 정정

⑤ 인쇄족보 발간이 그 대략입니다.

 

종래와 크게 다른 점은 기족 족보의 한글번역작업과 인터넷족보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입니다. 그래서 출판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다행히 저희가 선정한 서울 양평동 소재 「뿌리정보미디어」라는 출판사가 제가 조사차 접촉해 본 출판사 중에서는 족보출판경력이 풍부하고 직원들의 실력도 기대이상인 제법 규모가 큰 족보전문출판사였습니다.

 

문제는, 종래와 달리 새로운 족보편찬체계에 따르다보니 한글번역작업 및 인터넷족보 구축이라는 전에 없던 과정에 3,5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우리 씨족은 그 규모가 크지 않아 비용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나 저희 대종회 재정사정이 워낙 열악하여 이 정도 규모도 부담이 되고 달리 수입원이 있지도 않아 회장인 저로서는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번 족보는, 구 족보의 잘못된 점은 이를 밝혀 시정하고, 중요한 종사(宗史)를 포함시켜 명실상부한 우리의 씨족사 정사(正史)가 되도록 하여 종친들이 우리 성관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편집에 세심히 유의코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될수록 많은 종친들에게 배부가 될 수 있도록 염가로 제공할 계획이라 출간비용의 추가가 예상되기도 합니다.

 

이번의 족보편찬과업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우리 씨족사 기록사업이고 우리 씨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역사기록으로 남기는 소프트웨어적 사업으로서 어쩌면 재실의 신축 등 하드웨어적 대사보다 더욱 중요한 사업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종중의 대사를 당하여 이 과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여러 종친님들께 각별하신 협조의 당부말씀 올림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과거 우리 종중의 전통은 재실의 중수 등 큰 역사(役事)가 있을 때는 전국각지 온 종중이 합심 협력하여 성금을 갹출 과업을 수행하였으며, 이러한 미담은 기념비·현판 등에 새겨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족보출판을 위하여 담당출판사에서 타성관의 예를 보니 많은 종친들이 성금을 내고 있었고 이 사실을 홈페이지에서 현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우리 보사(譜事)에서도 성금을 지원해주시는 종친님의 프로필을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나중에 인쇄할 보책에서는 별도헌성기록으로 남겨 감사의 뜻을 표하고 전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선림종친제현님!

이번의 족보편찬사업은 지금까지 8차례 편찬에서 ① 부족했던 씨족사 서술을 보충하고 ② 잘못된 과오를 시정하며 ③ 일부 누락되었거나 착오가 있었던 부분은 바로잡고 보완하여 명실상부한 우리 씨족의 정사(正史)가 되겠금 편집에 온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부디 종친님들의 각별하신 관심과 협조 속에 우리 선산임씨의 족보편찬대사가 뜻한 바대로 잘 추진될 수 있도록 대종회에 힘을 보태주시기를 간원하는 저의 소망을 전해 올립니다.

 

끝으로, 이 홈페이지는 우리 선산임씨씨족사의 정사(正史)를 널리 알리는 방편일뿐 아니라 특히 새족보편찬사업, 인터넷족보구축사업 등의 추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방편입니다. (이 홈페이지에 올린 씨족사 관련 글들은 대부분 2021년 2월 전국종친회가 간행배포한 『선산임시씨족사』의 내용을 전재한 것으로 우리 씨족사의 정사(正史)에 해당하는 글들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강조드리고자 하는 바는, 인터넷망에서 ‘선산임씨’를 검색하면 카페 등에서 여러 내용의 글들이 나오는데 많은 글들이 확실한 근거하에 정론(正論)으로 쓰여진 글들이 아닌 단순 추측성 글들이거나 개인의 사견을 마치 사실인것처럼 주장하는 글들이 다수입니다.

이 홈페이지에서 정사(正史)로 제시하고 있는 글과 다른 내용의 글들에 현혹됨이 없으시도록 유의하십사 당부의 말씀 아울러 드립니다.

 

회장 임용원(林容源) 소개

* 선산임씨 경남 고성파 (월당공 구령파 능복후)

* 1945년 을유생, 중시조22세손(고성입향조 능복공은 父가 완공, 祖父가 구령공)

* 고성초교, 경남중고, 서울대 법과대졸업

*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입행 후 강남중앙지점장 등 여러 지점장을 거쳐 본점여신관리부장, 부산본부장 등 역임

* 2018년 4월 이후 선산임씨전국종친회장

* 공저 『선산임씨 씨족사』

* 논고문『선산임씨상계대고』 『임씨상계대고』(1) (2)

회장 임용원 010-3208-0027

    총무 임선우 010-2105-8488

 

p001.png 성금입금계좌(족보편찬회계용)   

농협 301-0335-6653-91   임용원(선산임씨전국종친회)